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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통 웹진

춘천의병 화약제조지 - 여의내골

감자PD 0 99

 

춘천 정미의병 때 화약제조와 훈련이 이루어졌던 곳 

 

 

변형 / 현재 화약제조장과 훈련장 자리는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내용 

1907년 8월 춘천 남면 가정리의 유홍석(柳弘錫)은 족숙인 유중악(柳重岳) 등과 창의를 모의하였다. 가정리 황골에서 박선명·유영석·유제곤·박화지·유태석 등과 함께 짧은 시일 내에 600여 명의 병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유홍석은 6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활동을 총괄하는 의병장을 맡았고, 박선명(朴善明)은‘총대장’을 자칭했을 정도로 의병활동을 주도하였다.

유홍석의병은 춘천과 가평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며, 일본군의 전신선 절단, 통행로 차단, 친일부호와 세금징수원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거나, 친일관료들을 붙잡아 징치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춘천의 진병산과 가평 주길리 등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무기열세와 훈련부족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패하였다. 당시 유홍석의병은 춘천지역의 항일의병들이 3개월 동안 춘천관찰부를 남북에서 포위하고 압박을 가할 때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처음 유홍석의병이 결성될 때에 가정(柯亭)·항곡(恒谷)의 화서학파 유림과 그 가족·인척들 및 향리 주민들이 일어나 군량·군자·탄약 등의 물품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연이은 전투로 군자금과 군수품이 부족하자 심지어 유중악은 농사짓는 소까지 의병의 군수품으로 제공하였고, 유홍석의 며느리인 여성의병 윤희순(尹熙順)은 향민에게 자금을 모아 구입한 놋쇠와 구리를 가지고 가정리 여의내골 주산에서 무기와 탄약을 제조하여 의병에게 공급하는 동시에 그곳에서 의병을 훈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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